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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오하라 (3) 어른만 살던 적막한 집, 내 재롱에 ‘까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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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현언 (43.♡.116.200) 작성일19-09-04 12:43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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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에 구멍내고 화장실에 빠지고 사고 치고 속 태워도 엄마는 항상 온화한 말씀으로 타일러시각장애인 가수 오하라씨(오른쪽 네 번째)가 지난 5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가족들과 함께했다.

주근깨에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소녀. 엉뚱한 일도 벌이지만 한편으론 사랑이 가득하고 문학적인 소녀. 이쯤이면 누구나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소설 속 주인공 빨강머리 앤. 나 역시 빼빼 마른 것도 엉뚱한 것도 그 앤 셜리 못지않았다. 살던 곳은 경기도 화성의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 첫 번째 집이라 지나는 사람은 우리 집에 들어와 길을 묻거나 물을 얻어 마시곤 했다. 그럴 때면 인심 좋으신 부모님께서는 찐 감자나 옥수수 같은 걸 대접하시곤 했다. 그 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다섯 식구가 살았다.

당시 나는 사내아이들처럼 산으로 들로 망아지처럼 달리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가족의 속을 태웠다. 하루는 장롱에서 꽃이불을 꺼내 이불 가운데를 가위로 오려내 곰돌이 인형의 이불로 만들었다. 논과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께서는 구멍 난 이불을 보시곤 할 말을 잃으셨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는 노발대발 야단을 치셨다. 그때 엄마는 할머니를 말리시고 나를 데리고 이불을 덮고 있는 곰 인형 앞으로 가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나! 곰돌이는 오늘부터 꽃이불을 덮고 자니 행복하겠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밤부터 구멍 난 이불을 덮어야겠구나.”

기억한다. 할머니의 야단치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내가 엄마의 온화한 말씀에 순간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것을….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구멍 난 이불을 덮고 잤다.

화장실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나무 널빤지 두 개를 걸쳐놓고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식이었다. 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가 여름인지라 널빤지 위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걸 보고는 발 위로 올라올까 무서워 발을 움직이다 그만 한쪽 다리가 널빤지 밑으로, 허벅지까지 빠지고 만 것이다.

나는 널빤지를 부여잡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할머니께서는 똥 범벅을 하고 나온 내 모습에 기겁하시며 달려와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한 손은 코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나를 ‘박박’ 씻기셨다.

말썽은 이뿐 아니었다. 아빠가 가게에서 사주신 흑사탕을 봉지째 들고 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과일을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두곤 했다. 그런데 나는 머리를 써서 내 키보다 큰 그 항아리 속의 사과를 꺼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항아리 속은 텅 빌 때가 많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식구들은 도대체 누가 사과를 가져갔나 의아해 했고, 결국 모든 게 밝혀지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외할머니는 “도무지 말릴 수 없는 별난 아이”라고 혀를 차셨다. 엄마아빠는 “저 녀석이 아주 영리하고 재치가 있으니 다른 집 아이들 여럿에 비교할 바가 아니라”며 나에 대한 기대를 풍선같이 부풀리셨다. 사건·사고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외조부모님과 부모님 목을 꼭 끌어안고 “사랑해”를 연발할 때면 그 재롱에 모두 ‘까무룩’ 넘어갔다. 하기야 여러 해 동안 어른만 살던 적막한 집안이었는데 어린 여자아이의 소동과 재롱이 끊이지 않으니 얼마나 혼이 빠지면서도 즐겁고 행복했겠는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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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에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소녀. 엉뚱한 일도 벌이지만 한편으론 사랑이 가득하고 문학적인 소녀. 이쯤이면 누구나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소설 속 주인공 빨강머리 앤. 나 역시 빼빼 마른 것도 엉뚱한 것도 그 앤 셜리 못지않았다. 살던 곳은 경기도 화성의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 첫 번째 집이라 지나는 사람은 우리 집에 들어와 길을 묻거나 물을 얻어 마시곤 했다. 그럴 때면 인심 좋으신 부모님께서는 찐 감자나 옥수수 같은 걸 대접하시곤 했다. 그 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다섯 식구가 살았다.

당시 나는 사내아이들처럼 산으로 들로 망아지처럼 달리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가족의 속을 태웠다. 하루는 장롱에서 꽃이불을 꺼내 이불 가운데를 가위로 오려내 곰돌이 인형의 이불로 만들었다. 논과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께서는 구멍 난 이불을 보시곤 할 말을 잃으셨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는 노발대발 야단을 치셨다. 그때 엄마는 할머니를 말리시고 나를 데리고 이불을 덮고 있는 곰 인형 앞으로 가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나! 곰돌이는 오늘부터 꽃이불을 덮고 자니 행복하겠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밤부터 구멍 난 이불을 덮어야겠구나.”

기억한다. 할머니의 야단치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내가 엄마의 온화한 말씀에 순간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것을….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구멍 난 이불을 덮고 잤다.

화장실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나무 널빤지 두 개를 걸쳐놓고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식이었다. 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가 여름인지라 널빤지 위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걸 보고는 발 위로 올라올까 무서워 발을 움직이다 그만 한쪽 다리가 널빤지 밑으로, 허벅지까지 빠지고 만 것이다.

나는 널빤지를 부여잡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할머니께서는 똥 범벅을 하고 나온 내 모습에 기겁하시며 달려와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한 손은 코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나를 ‘박박’ 씻기셨다.

말썽은 이뿐 아니었다. 아빠가 가게에서 사주신 흑사탕을 봉지째 들고 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과일을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두곤 했다. 그런데 나는 머리를 써서 내 키보다 큰 그 항아리 속의 사과를 꺼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항아리 속은 텅 빌 때가 많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식구들은 도대체 누가 사과를 가져갔나 의아해 했고, 결국 모든 게 밝혀지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외할머니는 “도무지 말릴 수 없는 별난 아이”라고 혀를 차셨다. 엄마아빠는 “저 녀석이 아주 영리하고 재치가 있으니 다른 집 아이들 여럿에 비교할 바가 아니라”며 나에 대한 기대를 풍선같이 부풀리셨다. 사건·사고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외조부모님과 부모님 목을 꼭 끌어안고 “사랑해”를 연발할 때면 그 재롱에 모두 ‘까무룩’ 넘어갔다. 하기야 여러 해 동안 어른만 살던 적막한 집안이었는데 어린 여자아이의 소동과 재롱이 끊이지 않으니 얼마나 혼이 빠지면서도 즐겁고 행복했겠는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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